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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의 역사, 한홍구 광주에서의 죽음은, 광주의 장엄한 패배는 수많은 광주의 자식에 의해 위대하게 부활했습니다. 뿔뿔이 흩어졌던 청년학생들은 투쟁성의 회복을 목표로 1983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이라는 단체를 결성했습니다. 이 단체의 상징이 두꺼비였습니다. 두꺼비는 뱀에게 잡아먹히지만, 두꺼비 독이 퍼져 결국 뱀은 죽어버리고 뱀의 몸을 자양분으로 수많은 새끼 두꺼비가 태어납니다. 광주의 자식들이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죽고자 했던 겁니다. 저 강고했던 군사독재가 왜 무너졌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지난 20~30년 동안 우리가 간고분투(艱苦奮鬪)해서 쟁취한 결실입니다. 그러나 간고분투해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우리가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숱하게 터져.. 2016. 3. 18.
어퍼컷, 정희준 사실 어린아이들을 온종일 패면서 운동 시키는 것은 '수준'이 안되는 지도자들에겐 성적을 올리는 가장 편하고 손쉬운 방법이다. 그 쉬운 걸 왜 포기하겠는가. '공부 안 하는 게 기본'이라는 논리를 감독은 물론 학부모, 그리고 경기 단체까지 당연시한다. 대한체육회 자정운동본부장은 학생 선수들에 대한 수업권 보장에 대해 이런 식으로 주장했다. "애들은 운동만 하고 싶어 하는데 억지로 공부를 하라고 시킨다면 이거야말로 인권 침해입니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운동해서 다들 성공한다면 내가 왜 잔소리를 하겠는가. 한둘 빼곤 다 실패하니까 문제 아닌가. 그 많은 선수 출신들이 후회하지 않는가. 그 아이들 인생을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그토록 무책임한 말을 어찌 그리도 쉽게 하는가. 아이들 공부도 안 하고 운동만 해서 .. 2016. 3. 15.
지상 최대의 쇼, 리처도 도킨스(Richard Dawkins) 윌리스는 계속해서 또 다른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의 말을 인용했다. 그도 근사한 표현을 잘 뱉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의 국민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말하기를, 만약에 맵시벌의 설계자가 있었다면 "결단코 가학적인 개자식이었을 것" 이라고 했다. 젊을 때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햇던 다윈도 같은 정서를 더 진중하고 덜 오스트레일리아다운 말투로 표현한 적이 있다. "자애롭고 전능하신 신께서 살아 있는 애벌레의 몸을 먹고 살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지닌 맵시벌을 의도적으로 창조했으리라고는 믿기 힘들다." 맵시벌의 전설적인 잔인함은(연관종인 조롱박벌과 타란툴라벌의 잔인함도) 이 책의 마지막 두 장에서 되풀이하여 다룰 악상이다. 2016. 3. 15.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Jean Ziegler)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 라고 썼다.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법칙은 사회정의를 보장한다. 세계시장은 규범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의 집단적인 의지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경제의 유일한 견인차는 이윤지상주의라는 입장,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허구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이 시대의 급박한 과제다. 시카고의 곡물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하며, 협의 등을 거쳐 제3세계에 대한 식량 공급로가 확보되어야 하고, 서구 정치가들을 눈멀게 만드는 어리석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폐지되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2016. 3. 15.
위험한 심리학, 송형석 결론적으로 사람은 사실을 냉철하게 판단하기보다 자기가 원하는 것에 더 충실하게 반응한다. 즉, 아무리 현실적으로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내가 그것을 원하면 나도 모르게 착각에 빠지고 만다. 따라서 상대를 파악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신의 본능이 이끄는 느낌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나의 경험과 이성적인 판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좀 더 알기 쉽게 얘기하자면, 자신에게 그럴듯하게 들리는 결론은 최후까지 보류하라는, 그러니까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말고 신중하라는 것이다. 2016. 3. 14.
일기일회(一期一會), 법정 스님 마음속에 있는 욕망, 미움, 질투, 번뇌와 같은 분별 망상 때문에 우리 마음이 평화롭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비울 때 본래의 자기로 돌아갑니다. 본래의 내 마음이 바로 무심입니다. 황벽 선사는 그것을 본원청정심(本源淸淨心), 본원청정불(本源淸淨佛)이라고 부릅니다. 근원적인, 더없이 청정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분별에서 떠난, 때 묻지 않은 맑고 투명한 마음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래 마음입니다. 2016.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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