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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y

여전히 왜 우리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지에 대한 사유(思惟)

by Frost. C 2016. 3. 20.

한동안 인터넷 미디어에 현대판 미녀와 야수 커플이라며 작은 국수집을 운영중인 부부의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해당 내용을 보고자 하는 분은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면 확인할 수 있다. (보러가기)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여기에서 생활의 달인으로 소개된 부인 혜진씨의 미모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므로 미인이다 아니다 등의 견해는 굳이 거론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남편 호준씨의 외모 역시 굳이 여기에서는 거론치 않으려 한다. 위 화제에서의 핵심은 그 내외의 외모가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당 소식에 대한 아래와 같은 반응들을 보자.


 

출처 : 클리앙

 

 

출처 : 페이스북 내 해당 소식에 대한 반응 편집

 

필자는 문제를 제기한다.


첫번째. 남자 가족이 금수저라거나 하는 주장을 한 사람은 본인이 직접 확인을 하고 말하는 것인가?

'남자가 금수저 아닐까?'나 '남자가 금수저네~' 또는 '남자가 금수저라 카더라' 식의 표현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특히나 마지막에 '~~라 카더라'와 같은 부분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투로서 '~~ 카더라'는 통상 그 발언의 신빙성에서 중대한 하자가 있다. 해당 발언의 출처를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상 카더라 통신은 그 신빙성에 문제제기를 받지 않고 거의 정설과 같은 등급으로서 취급받고 있다. 벌어진 현실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전혀 관계없는 가장 속편한 결론이기 때문에 카더라 통신은 사람에게 달콤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허나 출처를 밝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설사 해당 발언의 진원지가 나왔다 하더라도 그 발언이 참이라고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는가? 심히 의문스럽다.


두번째. 언제부터 우리는 타인의 행복을 
눈을 흘기며 바라보게 되었는가?

살면서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용어가 있다. '상대적 박탈감' 이 그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경쟁의 틀에 묶여 그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 대가를 상대적 박탈감으로써 치르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짝을 찾아 헤매는 청춘들이 전국을 배회하며 상대적 박탈감의 고배를 마시거나 혹은 상대적 박탈을 자행하고 있다. 물론 경쟁 자체를 부정하려드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분야에서 필요한 수준만큼 존재하는 경쟁이란 분명 아름답허나 세상의 모든 것을 경쟁으로 바라보게 강요하는 듯한 세태와 더불어 유한한 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이 처절한 전쟁에서 단 한치라도 우위에 서지 못했을 경우 그 결과를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대가로서 맞이해야하며 이런 현상이 반복되다보면 사람은 피해의식과도 같은 관념 속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번째. 언제부터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
 물질같은 가시적인 조건을 우선적으로 따지게 되었는가?

현재 당연시되는 듯한 명제에는 이런 것이 있다. "미인인 여자를 배우자로 맞거나 애인으로 맞으려면 남자의 경제적 능력이 좋아야 한다." 또는, "남자의 외모가 출중해야 한다." 이 명제가 참이라면 이 명제의 대우 명제 역시 참이어야 한다. 그럼 어떤 결론이 나오는지 보도록 할까. "남자의 외모가 출중하지 않거나 경제적 능력이 좋지 않다면 미인인 여자는 그 남자의 배우자나 애인일리가 없다." 자,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분 중에 미인이신 분. 이 결론이 타당한지 답변해 주신다면 감사하겠다.

물론 인간관계 내에 물질적인 부분이 전혀 관련이 없을 수는 없다. 허나 그러한 가시적인 부분이 인간관계를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요소는 될 수 없다. 분명 다 이런 내용들 살면서 다 배웠고 체감하고 있다. 헌데 우리는 자주 잊는 듯하다. 그만큼 사회가 각박하다는 반증인 것일까.

결국에는 이런 문제점들 또한 사회의 시스템적인 측면에 원인을 꼽을 수밖에 없다. 과도한 경쟁은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 자원은 유한하다. 모든 사람이 자원을 동일하게 향유할 수 없다 하더라도 독점과 같은 양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결과적으로 자원의 독점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자 모두를 좀먹는 악의 축이다.

인간관계가 물질의 잣대로만 평가되지 않도록, 개인이 타인의 행복에 눈을 흘기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권한 있는 분들의 지혜로운 결단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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